2024년 초 한국 자전거 업계 근황에 대해서 알아보자

1950년대 전후

2024년 초 한국 자전거 업계 근황에 대해서 알아보자
60년대에 개최된 자전거 대회

우리나라에 자전거가 처음 들어온 것은 구한말 개화기때임

예조시랑이었던 고희성이 탔다느니,
서재필 박사와 윤치호 박사가 탔다느니 하는 말이 있는 것 봐서는
그 당시에 꽤 보급된 것 같음

일제때에는 여기저기서 자전거 경주대회가 열리는 등
볼거리가 많지 않았던 그 당시
지금의 스포츠 같은 큰 이벤트였음

광복 후에는 서울에만 52,000여 대가 있을 정도로 보급되었고
출퇴근 용도와 개인의 교통수단으로 널리 사랑받음

6·25 전쟁 이후에는 기아산업주식회사에서
본격적인 자전거 생산이 이루어짐

이 회사에서는 한반도 전체 거리인 3,000리(약 1200km)
곳곳을 누리고 다니라는 뜻으로
'3,000리호'라는 이름의 국내 최초 자전거를 생산함

훗날 기아에서 독립하여 '삼천리자전거'라고 명명했고
지금까지도 한국 자전거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회사가 됨

자전거 시장의 태동 – 화려한 성장기를 보내다

2024년 초 한국 자전거 업계 근황에 대해서 알아보자
그때 그시절 삼천리자전거 광고

삼천리자전거는 산업화 시절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음

1965년에는 미국에 첫 수출이 이루어지면서
해외수출이 급격하게 증가했고
쌀집 자전거로 대표되는 각종 짐 배달용과
어린이의 장난감 용도로
내수시장에서도 눈부신 성장을 일궈냈음

이러한 흐름은 90년대까지 계속되었으나
그 이후에는 국내 임금이 치솟아 원가경쟁력을 상실하여
해외 수출이 급감되었음

또한 국민소득이 늘어나면서 자동차와 오토바이 보급이 늘어나게 되자
삼천리를 포함한 국내 자전거 산업은 기나긴 침체기에 빠지게 됨

MTB가 산업을 이끌다

시마노는 업계의 표준이 되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일찌감치 자동차가 보급되다 보니
자전거는 그저 청소년과 어린이가
주로 타고 다니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음

세월이 흘러 1970년대 들어서서
캘리포니아 샌프라시스코의 산악지대에서
다운힐(내리막, 언덕을 내려가는 것)을 즐기는 청년층이 급속하게 증가했고

여기에 영향을 받아 80년대에는
미국 전역에서 다운힐 대회까지 열리게 됨

그러나 비포장도로였던 그곳에서 즐기다 보니
일반 제품은 쉽게 고장이 나기 일쑤였고
이것을 고쳐주는 곳이 없다 보니
개인차원에서 직접 수리를 하거나 개조를 할 수 밖에 없었음

여기에 주목한 회사가 있었으니 바로 일본의 '시마노'임

당시만 하더라도
동양의 2류 부품회사에 머물러있던 시마노에서는
다운힐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개량된 성능의 부품을 지속으로 출시함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경쟁회사의 그것과 비교해서 전혀 부족함이 없다 보니
입소문이 나면서 이용자들 사이에서 대박을 치게 됨

이렇게 하여 생긴 것이 바로 MTB 산악자전거였고
MTB는 그때부터 자전거 산업의 기술발전을 선도하게 됨

그리고 시마노는 세계 굴지의 자전거 부품회사가 되었고
자전거 부품의 표준이라 할 정도로
이 업계에서 막대한 영향력과 위상을 지니게 됨

제2의 전성기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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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공사로 인해서 전국으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가 완성되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중후반 IMF 외환위기 겪으면서
업계 전체가 거의 망할 뻔 했음

가뜩이나 판매율이 매년 하락했었는데
IMF가 막타를 날리는 셈이었음

2000년대 초 외환위기를 점점 벗어나면서
바닥까지 떨어졌던 판매율이 조금씩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일등 공신은 다름아닌 MTB였음

당시 본격적으로 가정에 인터넷에 보급되고
건강에 좋다며 온라인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이것을 타는 인구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함

또한 신도시와 택지개발지구가 여기저기 생기면서
잘 닦여진 포장도로를 이용하여 타고 다니는 사람도 점점 늘어남

그때만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MTB가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라

기존의 자전거와 다르게 기어가 높은 것, 브레이크가 잘 드는 자전거,
고장이 잘 나지 않고 내구성이 좋은 제품으로만 인식되었고

오히려 이러한 점들 때문에 동호회를 넘어
일반사람들까지 이용하게 되는 등 저변확대에 크게 이바지함

그 후 4대강 공사가 끝나면서 강변을 중심으로
자전거 도로 조성사업이 완공되었음

서울 한강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자전거도로가
4대강 공사를 통해 전국 곳곳에 생기자

이런저런 고개가 많아 지형적으로 자전거 이용이 힘들었던
국내 시장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됨

단순한 개인 이동수단이 아닌
본격적인 레저용으로 즐기게 된 것임

4대강을 중심으로 한 자전거 도로 조성사업은
그야말로 대박을 치게 됨

국토종주를 즐기는 사람도 점점 많아지게 됨

포장도로에서 주로 달리다 보니 이제는 MTB가 아닌
속도를 중시하는 로드바이크가 점점 대세로 굳혀짐

자전거 인구도 1,0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폭발적으로 늘어나
국내 업계와 시장은 제2의 부흥기를 보내게 됨

10년 전 ~ 최근까지

2024년 초 한국 자전거 업계 근황에 대해서 알아보자
공유자전거는 중국에서도 대박 행진을 했지만 얼마 안가서 거의 다 망해버렸다 – 자전거 무덤

그러나 로드바이크의 광풍은 채 10년이 이어지지 못하고 끝나버렸음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치자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기조가 이어졌고
이를 타개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모델로 공유경제가 급부상했는데
자전거 산업이 공유경제의 핵심으로 떠오르게 된 것

하루가 다르게 이용자가 점점 늘어났던 그때,
각 지자체에서는 너도나도 공유자전거를 도입했고
이것이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됨

저렴한 비용으로 타고 싶을 때 타고
별도의 보관이나 관리가 필요치 않다 보니
서울의 따릉이같은
지자체의 공유자전거 사업은 대박을 치게 되었지만
상품 수요는 팍 꺾어버리는 폐해를 낳게 됨

그리고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야외활동을 꺼리는 문화와 인식이 생기게 되자
국내 시장은 다시 한 번 IMF 때처럼 침몰하기 직전까지 몰리게 됨

당시 국내시장은 삼천리와 알톤으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점유율 2위였던 알톤은 망하기 직전까지 몰리게 됨

이와같은 상황에서 자전거 업계를 살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19 팬데믹이었음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집콕을 할 수밖에 없게 되자
혼자 즐길 수 있는 야외활동인 자전거에 사람이 몰리게 되었고
급격한 판매확대까지 이어지게 된 것

또한 배달음식 등 집이나 실내에서 배달주문이 급격히 증가하자
알바를 하는 배달원들이 전기 자전거를 이용하게 되면서
폭발적으로 매출이 늘어나게 됨

전기자전거는 2010년대 초중반, 시장에서 반짝하던 아이템이었으나
큰 빛을 보지 못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판매율이 확 늘어남

이로인해서 국내 1위 삼천리자전거는 역대 최고 매출을 경신했고
알톤은 공공자전거를 많이 납품하면서 사업 위기를 모면하게 됨

2024년 초 한국 자전거 업계 근황에 대해서 알아보자
전기자전거 및 퀵보드같은 새로운 모빌리티가 출현했다

팬데믹이 끝난 현재의 자전거시장은
새로운 모빌리티의 대각축이 벌어지는 형국임

전기 배터리 효율이 급격히 좋아지면서
전세계적으로 전기 자전거 수요가 폭발하고 있으며
퀵보드같은 새로운 수단이 출현한 것

그리고 기존 자전거는 고급화 열풍을 주도하면서
몇백이 아닌 몇 천까지 가격이 확 뛰어 올랐고

일반 제품은 값싼 수입품이 완전히 잠식하면서
국내 시장은 고급 – 일반시장으로 완전히 분화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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